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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광 : 발레리 제나티의 <가자에 띄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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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5,004회 작성일 08-09-1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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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발레리 제나티의 <가자에 띄운 편지>
     
     다른 날도 아니고 딱 그 날. 세계인의 축제(라고들 하는) 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던 날 전쟁은 시작됐다. 지구 한켠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쇼에 넋을 놓은 사이 또 다른 한켠에서는 폭탄이 투하되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곧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이라는 속보가 떴고, 침공 이유에 대해 러시아는 "그루지야의 남오세티아 침공에 대한 맞대응"이라고 밝혔다. 남오세티아 자치공화국 수도 츠힌발리 외곽에 그루지야군 탱크가 진입했고, 이에 앞서 그루지야군은 휴전 합의에도 불구하고 츠힌발리를 포위하고 무차별 공격을 퍼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남오세티아 내 자국민 보호라는 명분으로 그루지야 공습을 시작했다. '사실상 전쟁 발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담담한 한 줄의 헤드라인이 눈을 찔렀다. 넋을 놓을 일이었다.
    발 빠른 언론은 원인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그루지야가 러시아의 충실한 동맹이었다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대다수였다. 그루지야가 나토에 가입하는 등 친 서방 정책을 펼치기 때문에 미운털이 박혔다는 것이다. 그루지야를 지나는 송유관에 대한 러시아의 욕심도 한몫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여기에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미국이 개입한다는 흉흉한 이야기가 이어졌고 러시아와 미국 간 '신냉전 시대'가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남오세티아에서 16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그루지야 침공으로 수천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불과 닷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절박한 얼굴의 남오세티아 난민은 "모두가 전쟁을 멈춰주길 바란다. 아무도 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외쳤다. 사람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전쟁은 시작됐고 끝났다. 넋을 놓을 일이었다.

    나와 당신의 매정함.
    그 사이 우리는 열에 달뜬 사람들처럼 신이 났다. 올림픽과 메달 만능 증후군이라는 병에 걸리기라도 한 듯. 신문과 포털은 연일 우리의 메달 개수와 금메달을 따고 눈물 흘리는 선수들의 사진이 대문을 장식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위한 특별 섹션을 마련하고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는 동안. 거기서 많은 사람들이 울고 절규하며 다치고 죽.어.갔.다.
    올림픽에 열광한 것 자체를,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4년 만에 한 번, 거기에도 역시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고 가히 감동적이라 할 만한 일들이 벌어졌다. 나 역시도, 끝까지 바벨을 놓지 않았던 이배영 선수에 감동했고, 장미란 선수의 세계 신기록에 내 일처럼 기뻤다. 어려운 경제 상황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비롯된 국민과 대통령 간 갈등(이라고 해야 할까)으로 힘든 국민들에게 운동선수들의 활약과 올림픽의 드라마는 대단한 위안이었다.
    굳이 말한다면, 매정하달까. 한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여주듯 극적인 영상에만 치중하고 그렇지 않으면 올림픽 소식에만 열을 올리는 언론이나, 그래 전쟁은 참혹하고 고통스럽지만 지금 내게 일어나지 않으면 잠깐 꺼둘 수도 있는 화면 저 편의 일에 불과한 것이, 그런 나도 그런 당신도 모두 매정하기 짝이 없다. 넋을 잃을 정도로.
    어떻게 그렇게 매정해질 수 있을까, 종종 생각하곤 했다(종종 전쟁이 터졌다). 그러다 우리는 그저 다만 잊을 뿐, 이라는 답에 도달했다. 우리는 거기에 우리와 같은 사람이 숨 쉬고 먹고 사랑하며 살아있다는 것을 잊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도무지 현실적이지가 않은 것이다. 게임 화면에서 불타는 집이나 쓰러지는 사람을 보듯이.

    나와 너로서 만날 수 있다면
    발레리 제나티의 <가자에 띄운 편지>(이선주 옮김·낭기열라·2006)는 우리가 종종 잊는, 거기에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우리와 같은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일깨운다. 이스라엘 소녀 탈과 팔레스타인 청년 나임이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소통과 이해를 시도한다는 내용의 책은 어린 소녀와 소년을 화자로 내세워 전쟁에 대해 솔직하고 편견 없이 묻고 이야기하고 고민할 수 있게 한다. 탈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자살 테러로 이웃 사람들이 죽어가는 현실과 그들의 분노를 이해할 수 없고, 나임은 학교에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하고 몇 개의 장벽을 거쳐야 하는 삶에 고통스러워한다. 탈과 나임은 다른 나라의 10대들이 그러하듯 즐겁고 유쾌한 메일 친구가 될 수 없다. 그들이 나누는 일상이란 언제 어디서 너희 나라 사람들 때문에 우리나라 누가 죽었다는 것이다. 끔찍하게도. 어쨌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서로를 혐오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둘은 테러나 공격이 일어난 날이면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며 상대의 답장을 기다린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도 서로 죽고 죽이는 사이라 할지라도 상대가 저 편에서 살아있어주기를 바란다. 이스라엘 사람 탈, 팔레스타인 사람 나임이 아닌 그저 탈과 나임으로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새삼스레 전쟁에 대해 너무 단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지구 저편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일상적으로" 무감각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책의 구절처럼 "그 사람들이 각자 하나의 개체로 존재한다는 걸, 그들이 공통된 운명에 처해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닮은꼴인 익명의 존재가 아니란 걸 인식"하게 되면, "그 사람들 각자는 둘도 없는 유일한 존재"라는 걸 모두가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면 어떤 전쟁에 대해서도 찬성할 수 없을지 모른다. 전쟁에 대해 경제적 이득 어쩌고 하는 소리는 절대 할 수 없을지도.
    시나리오 작가이자 소설가인 발레리 제나티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이스라엘에서 자랐고, 이스라엘에서 군복무를 한 경험도 있다. 2003년 9월 9일에 실제로 일어난 테러를 계기로 이 책을 썼고, 2005년 프랑스에서 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송 민 성 (본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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