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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광: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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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5,152회 작성일 08-06-1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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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을 가진 당신들에게
    - 기묘하고 불안한 그 시절, 나를 위안하는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선물로 받아선 오래도록 책장에 방치해 두었다. 속으로 '유치한 제목에 유치한 일러스트'라고 중얼거렸거나 '아쿠타가와상 최연소 수상자 따위, 요란 떠시긴'(작가 와타야 리샤는 17살 <인스톨>이라는 소설로 문예상을 수상하며 등단했고, 2년 만에 발표한 이 소설로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하고 비웃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느 날 문득, 잊고 있었던 사진집을 꺼내어 들추어 보듯 그 책을 집어 들었고, "쓸쓸함은 울려 퍼진다."는 첫 번째 문장부터 완전히 매료되었을 뿐이다.
    와타야 리샤의 장편소설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정유리 옮김·황매 펴냄·2004)은 고등학교 과학실의 실험 장면으로 시작한다. 친구들끼리 깔깔거리며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선생님 몰래 장난을 치고 선생님은 주의를 주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물론 함께 조를 짜고 수다를 떨 친구가 있는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다.
    "오늘은 실험이니까, 다섯 명이 적당히 한 조를 만들어 앉도록."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 과학실 안에는 심상치 않은 긴장감이 돈다. 친한 친구들로만 다섯 명을 채울 수 있을지, 모자라는 인원은 누구로 채워야 할지 서로가 서로를 탐색하는 눈길이 빠르게 뒤엉키는 가운데 그 어느 눈길에도 속하지 못하는 하츠는 그저 비참할 따름이다. 단짝 친구라고 믿었던 키누요에게서도 버림받고, '나머지'가 되어 다른 조에 얹혀져야 하는 비참함.
    다행인지, 그 반의 나머지는 하츠말고도 더 있었다. 고양이처럼 굽은 등을 하고 여성패션 잡지를 뚫어져라 읽고 있는 니나가와 역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나머지였다. 하츠의 표현대로 "희한한 동료의식"이 급형성되었는지, 니나가와는 하츠를 집으로 초대하고, 하츠는 어두컴컴하고 촌티 나는 그의 1인용 방을 찾아간다.
    둘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하츠는 한발 먼저 자라 외로운 아이다. 단짝 친구였던 키누요마저 다른 친구들과 그룹을 만들어 버려서 정말 외톨이가 됐다. 웃자란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 현실에서 한 뼘쯤 떨어져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조소하거나 이해할 수 없어하거나 동정한다.
    하츠에게는 그룹에 속하려고 낑낑거리는 아이들이나, 아이들이 좀 추켜준다고 들떠하는 체육 교사나 어리석게 느껴질 뿐이다. 그들에게 흥미가 일지도 않지만 역시 한 공간에서, 가뜩이나 예민한 시기에 꼭 그만큼 예민한 아이들 틈에서 혼자 지내는 것도 쉽지 않다.

    "왜 저렇게 섞이고 싶어 하는 걸까? 같은 용액에 잠겨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른 사람들에게 용해되어버리는 게 그렇게 기분 좋은 것일까? 난 '나머지 인간'도 싫지만 '그룹'에 끼는 건 더더욱 싫다. 그룹의 일원이 된 순간부터 끊임없이 나를 꾸며대지 않으면 안 되는, 아무 의미 없는 노력을 해야 하니까."

    그리고 니나가와. 니나가와는 집에 딸린 복층의 방에서 혼자 빨래를 하고 식사를 해먹으며 거의 완벽한 독립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방에는 언제 널었는지 모를 바싹 마른 빨래들과 치즈가루 대신 먼지를 얹고 있는 스파게티, 할머니의 유품 따위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그가 동경해 마지않는 예쁘고 깜찍한 모델, 올리짱에 관한 것이다. 올리짱의 상세한 프로필부터 관련 기사 따위가 잔뜩 스크랩된 파일들, '올리짱 애용 이너웨어'라는 제목을 단 보풀 인 블라우스 등등. 올리짱이 나오는 라디오를 듣고, 그에 관한 물품들을 수집하고, 기사를 읽는 것 외에는 거의 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다.

    이유는 다르지만 어쨌건 이 둘은 외톨이다. 하츠가 다른 사람들과 섞이지 않는 자신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자각형 외톨이라면 니나가와는 그런 것 따위 전혀 개의치 않는 용감한 외톨이다. 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고 했지만 이런 두 외톨이 사이에서 어떤 극적인 전개를 기대하는 건 좀 무리인 것이다. 둘이 있어봐야 니나가와는 올리짱 라디오를 듣지 않으면 올리짱 얘기만 늘어놓고, 하츠는 그런 니나가와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니까, 밋밋하다면 밋밋할 장면들만 이어진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그런 게 아니구, 뭐라고 해야 하나. 난, 반 아이들이랑 별로 얘기를 안 하긴 하지만, 그건 '낯을 가리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을 고르기 때문'이야."
    "응, 응."
    "그러니까 난, 사람에 대한 취미가 좀 고상한 편이라 유치한 사람이랑 얘기하는 게 괴롭다구."
    "사람에 대한 취미가 고상하다니, 그거 최고로 악취미 아니냐? … 하지만 나 알 것 같다 그런 거. 아니 그런 식으로 말해버리는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애."

    무시하는 것 같기도, 동의하는 것 같기도 한 니나가와의 말에 하츠는 뜻밖의 위안을 얻는다. 위안을 얻은 것은 하츠 뿐만이 아니었다. 하츠와 니나가와의 이야기에 몰래 귀 기울이고 있던 나도 그들에게 위안 받았다. 완벽한 '나머지'도, '그룹'도 되지 못하고 오롯이 나이기만 했던 탓에 종종 외롭고 종종 냉소적이었고 종종 신났고 종종 갑갑하고 종종 유치했던 10대를, 나 역시도 지나왔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에게 속하고 싶기도 했고, 친구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고 싶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만 열 올리며 다른 것은 알 바 아니라는 듯 지내고 싶기도 했다. 그 미묘한 욕망과 좌절 사이를 오가며 무수한 감정을 경험하면서 자라나는 일이란, 그러니까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을 등에 얹고 있기란 얼마나 복잡하고 진 빠지는 일이던지.
    그 기묘하고 불안하던 시절 나에게도, 하츠나 니나가와 같은 친구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츠와는 똑같이 냉소하면서 쿵짝 잘 맞는 친구가 되었을 지도 모르겠고(서로가 서로를 냉소하면서 으르렁거리는 앙숙이 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만날 올리짱만 외워대는 니나가와의 등을 퍽퍽 차버렸을 지도 모르겠고, "올리짱 따위 집어치워!"라며 소리를 질러댔을 지도 모르겠다. 셋이서 아주 멋진 외톨이 트리오를 구성해 전교에 이름을 떨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더라면 나의 10대는 좀 덜 빈약하고, 조금쯤 더 빛나는 시간으로 기억되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송 민 성 (본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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